예술 전문 채널 - 푸코의 에크리튀르 알아보기!
안녕하세요! 예술 전문 채널입니다. 오늘은 푸코의 에크리튀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푸코의 에크르튀르 알아보기!
텍스트에서 에크리튀르는 상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을 이어주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사드의 작품에서 인물은 처음부터 가능한 상상적 세계 전체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는 이 상상적 세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그 한계를 지나치고, 그 경계를 뒤흔들고 그것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에게 에크리튀르는 우리를 현실로 이끌어주지만 동시에 현실을 비존재라는 한계(실재)까지 밀어붙이는 계기인 것이다.
에크리튀르의 상상력!
에크리튀르는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것,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 그리하여 현실을 거의 아무것도 없음(실재)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에크리튀르는 말하자면 현실 원칙을 상상력의 경계 너머 가장 먼 곳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또 에크리튀르는 현실의 계기에 일정한 유예를 가져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현실 원칙을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에크리튀르는 현실을 상상력 자체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존재(실재)에 이르기까지 밀어붙인다. 에크리튀르는 현실원칙의 장소를 지탱해주는 것이자, 상상력이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에크리튀르의 첫 번째 기능은 현실과 상상력의 경계를 철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드의 에크리튀르가 매우 정확히 성적 향락의 두 순간 사이에서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상력의 운동이 점차적으로 첫 번째 성적 향락으로 인도되어야 하며, 우리가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오직 그 이후라는 점이다. 사드는 우리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다시금 되풀이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성적 몽환의 내부에서 되풀이의 원칙을 작동시키는 에크리튀르, 다시 말해 우리가 꿈꾼 것으로 되돌아가고, 상상 속에서 그것을 되풀이하고, 우리가 그것을 반복되는 상상 속에서 되풀이하면서 이미 지나간 것, 곧 향락을 되풀이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에크리튀르 덕분이다. 즉 에크리튀르는 되풀이된 향락의 원리인 것이다. 즉 에크리튀르의 두 번째 기능은 따라서 시간적 한계를 소거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되풀이(반복)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에크리튀르의 세번째 기능
에크리튀르의 세 번째 기능은 단순히 향락의 무한정한 되풀이를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상상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한계들을 넘어서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되풀이되는 에크리튀르는 또한 증식시키는 에크리튀르, 악화시키는 에크리튀르, 무한정하게 증가하면서 증식되는 에크리튀르이기도 하다. 이 다시 쓰기, 이 쓰기-읽기-다시 쓰기-다시 읽기 등은 상상력을 무한정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한계들을 넘어서게 된다. 에크리튀르는 스스로를 열어젖히는 동시에, 이미지, 쾌락, 과잉이 어떤 한계도 없이 확장되는 하나의 무한한 공간이 자신의 앞에서 열리는 것을 본다. 결국 에크리튀르는 한계 자체에 대한 탈한계화 작업인 것이다. 에크리튀르의 네 번째 기능은 개인이 행위의 모든 규범과 관습을 넘어, 모든 법을 넘어, 모든 금지된 것과 허용된 것을 넘어서 가능한 최대의 거리, 틈새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상상되고, 글쓰기에 의한 작업을 거쳐, 극단까지 밀어붙여진, 이 극단의 한계 너머 자체에까지 밀어붙여진 행위, 이 행위는 개인을 불가능의 지점에 위치시킨다. 개인은 이제 특이성 자체의 가장 일탈적인 지점에 존재하게 되고, 가능한 가장 커다란 틈새에 위치하게 되면서, 더 이상 어느 누구와도 공통점을 갖지 않게 된다. 에크리튀르는 따라서 이러한 운동의 동인으로서의 과잉과 극단의 원칙인 것이다. 에크리튀르는 개인을 단순히 특이성 안에 위치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을 치유 불가능한 고독 속으로 몰고 간다.에크리튀르는 무한정한 세계에 불규칙성을 도입한다. 따라서 에크리튀르는 어떤 한계도 없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고야 만 욕망이다. 에크리튀르는 진실이 되어버린 욕망, 욕망의 형식을 지닌 진실이다. 에크리튀르는 되풀이되는 욕망, 한정이 없는 욕망, 어떤 금지의 법도 갖지 않는 욕망, 어떤 억제도 모르는 욕망,
외부가 없는 욕망이라는 형식을 갖는 진실인 것이다.